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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P1010059.JPG    작성자 : 문계완    작성일자 : 2007-10-05    조회수 : 1811 
제목(Subject)   개성공단 방문기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지난 4월 모바일 월례포럼때 처음 개성공단 방문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통일부에 근무하시는 홍양호 남북회담 대표위원께서 적극적으로 주성해 주셔서 우리 교수님들과 포럼의 사장님들이 함께 방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개성시내까지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여겨져 기대를 많이 했으나 남북정상회담이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잡히는 바람에 우리 방문이 연기되었다가, 정상회담이 연기되는 사정으로 인해 다시 원래의 일정 (07년 8월 31일, 금)으로 방문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옇든 원래 교수님 13분 기업체 사장님들 14분 이렇게 27분이 참석하기로 되었다가 일정과 개성시내 관광이 취소됨으로 인해 17분이 가시게 되었다. 
빠리바게트의 샌드위치를 조식으로 하면서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 김범술 부사장님과 몇 몇 분들을 만난 후 다시 경복궁으로 가서 조금 대기하다가 바야흐로 이북땅을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 테니스회 회장님이신 이종환 교수님, 테니스 파트너 송주범 교수님, iT를 대표한 김덕규 교수님, 우리 동신교회 교수선교회 회장이신 오창혁 교수님, 연구소 소장님이신 한도형 교수님, 북한선교의 소망을 갖고 계시는 김태환 교수님, 고려사를 전공하시는 최정환 교수님, 그리고 우리 박기열 사장님, 김성범 사장님, 김범술 부사장님 등 약간은 긴장하는 마음으로 도라산 역을 출발하여 휴전선을 넘어가는 경험을 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 말로만 듣던 임진강도 보고 철조망 넘어 이북땅이 보이기도 하였다.  남한에서 출경신고를 마치고 휴전선을 넘어가는 데 우리 군의 영역을 넘어 북한군의 짚차 인도로 북한으로 넘어 가게 되었다.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바로 북한 입국 절차를 가지게 되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우리가 서로 살고 있는 데 인간의 이념으로 인해 이렇게 통행이 끊겨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이북 입국 수속을 하는 데 바야흐로 이북 군인들이 검열하는 입국 절차를 상대적으로 쉽게 통과하고 개성에 도착하였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재는 간 데 없네 라고 읊었던 시인의 마음과 같이 남한과 북한이 자연적으로 뭐 그렇게 다르겠냐만,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뭔가 다른게 없는가 유심히 바라 보았다. 다 이게 우리의 산천이 아닌가?
공단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듣고 공단의 설립 취지와 의의 등을 알아보고 Family Mart도 방문해 보고 점심식사하러 갔다. 동봉관이라고 한다. 지난 몇 개월 전 열우당의 김근태 의원이 여기서 이북의 접대부 아가씨들과 춤을 같이 췄다고 대서특필된 곳이기도 하였다. 식당이라고 하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동포를 보는 신선함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북한 냉면을 먹었지만 그리고 김치나 각종 반찬을 먹었지만, 사실상 우리가 남한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못한 것 같았다. 원래 음식이라는 것이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니 만큼 더 좋다! 더 나쁘다! 하기가 어렵겠지만 아직은 조금은 촌스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시에 아니, 내가 이렇게 까다로와졌나? 하는 의문도 동시에 생기면서 말이다!
개성공단 방문을 통해 가장 인상적으로 배운 것이라면 개성공단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3통'이 해결되어야 한단다. 여기서 3통이란 일단 통행, 통신, 및 통관이라고 한다. 통행은 우리가 휴전선을 넘어 오면서 하루에 12회 매 30분 혹은 정시 기준으로 허용이 되고 그 시간까지 대기하였다가 휴전선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왕래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허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통신이란 인터넷 통신 및 유무선 통신일 것이다.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자유로운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문제는 지난 02년 중국 남경을 방문하였을 때도 느낀 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관절차와 관계된 것이다. 아직까지 통제된 상태에서 통관이 자유롭지 않으니 상거래가 활발해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한가지 더 재미있는 일은 근로자에 대한 통제이다. 통제사회인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가 했더니만, 알고 보니 공단에 진출한 사업주가 자기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통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원 에벤에셀에 근무하는 많은 분들이 월 6만원의 월급을 받으나 사실은 그 돈이 다 국가로 가고 근로자들에게는 1만원만 돌아 간다고 한다. 마치 남한이 지난 60년대 초에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가 이민가서 일하고 국가가 그로 부터 담보혜택을 누린 것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현대아산 건물의 방문 등을 마치고 또 두번의 출국 및 입국 검사를 거치고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체험을 하였다. 한 사장님은 북한 사람들의 이빨을 유심히 관찰하였다고 한다. 공단의 최고 책임자인 북한 참사관의 이빨을 보아도 성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동봉관에서 근무하는 아가씨들의 이빨도 그리 깨끗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치과의 발전이 그 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공단에서 멀리 보이는 북한 주민의 삶의 모습, 그리고 동봉관에서 공단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북한 주민이 거하는 집을 보고 생각과는 달리 너무 처참한 모습에 아연실색을 할 뻔 하였다. 몇 십년 전에 세워진 시멘트 집으로 페인트 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문은 없고 프라스틱 때묻은 발을 쳐서 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공단 안내 여직원의 말을 빌리면,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고 때로는 집이 무너지기도 한단다. 이사를 할 때는 어떤 때는 집채 덜어서 옮기기도 한단다. 그러니 집의 기초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아뭏든 긴장되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잘 지내고 있다. 북한에서 사온 꿀을 맛보고 나중에 선물하려고 샀던 백두산 철쭉술도 아직 가지고 있다. 북한산 고사리를 맛보아도 특별히 더 낫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무엇일까? 왜 우리 민족이 아직도 이러한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는가? 이제 다음 세대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휴전선을 넘어 비무장 지대로 가는 그 느낌을 이제는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를 세계의 자연보호 청정구역으로 만드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개성공단에서 송악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합니다. 필자는 사진에서 제일 왼쪽에 있습니다. 공단을 설명하는 직원 아가씨는 영어를 썩 잘 한다고 하네요! 공단에는 북한의 인재가 많이 모여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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